영화 범죄도시 리뷰

가끔은 화려한 액션이나 복잡한 서사보다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영화가 더 깊은 인상을 남긴다. 강윤성 감독의 '범죄도시'는 바로 그런 영화다. 2017년 개봉한 이 작품은 단순한 이야기 구조에 매력적인 캐릭터, 그리고 생생한 액션 연출을 더해 한국 범죄 액션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순함 속에 담긴 강렬함
'범죄도시'의 줄거리는 의외로 단순하다. 서울 가리봉동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폭력조직 형사 마석도(마동석 분)는 새롭게 등장한 중국 조직 '흑룡파'와 그 잔혹한 보스 장첸(윤계상 분)을 소탕하기 위해 나선다. 이야기는 마석도와 그의 팀이 장첸을 추적하고 결국 직접 대면하게 되는 과정을 따라간다.
하지만 이 단순한 이야기 속에는 강렬한 긴장감과 폭발적인 에너지가 담겨 있다.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호흡을 조이면서 관객을 사건 현장으로 끌어들인다. 특히 범죄 조직의 가혹한 행태와 경찰의 대응을 사실적으로 그리면서도, 유머와 액션의 균형을 절묘하게 유지하며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마동석이라는 압도적 존재감

'범죄도시'를 이야기할 때 마동석의 존재감을 빼놓을 수 없다. 마석도라는 캐릭터는 단순히 근육질의 터프한 형사를 넘어, 독특한 매력과 인간미를 지닌 인물로 그려진다. 그의 "니가 그렇게 싸움을 잘해?"라는 대사는 이제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대사가 되었다.
마석도는 폭력적이면서도 정의롭고, 무자비하면서도 따뜻한 모순적 매력을 지닌 캐릭터다. 그는 범죄자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지만, 시민들과 후배 경찰들에게는 믿음직한 보호자다. 특히 마동석의 독보적인 액션 연기는 CGI나 와이어 액션에 의존하지 않고도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여준다. 그의 거대한 주먹이 적을 강타할 때마다 관객들은 그 타격감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새로운 빌런의 탄생
'범죄도시'의 또 다른 성공 요인은 윤계상이 연기한 장첸이라는 빌런 캐릭터다. 그동안 깔끔하고 세련된 이미지로 알려진 윤계상은 이 영화에서 180도 다른 모습을 보여주며 관객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그의 장첸은 냉혹하고 잔인하면서도 어딘가 불안정한 심리상태를 지닌 복합적인 인물이다.
장첸은 독특한 헤어스타일과 패션, 그리고 중국어와 한국어를 섞어 사용하는 특징적인 말투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특히 그의 예측불가능한 광기와 잔혹함은 관객들에게 실제 공포감을 안겨준다. 무고한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잔혹한 폭력 장면들은 장첸이라는 캐릭터가 단순한 영화 속 악당이 아닌, 실제 존재할 수 있는 현실적 위협으로 다가오게 만든다.

사실적인 액션 연출
'범죄도시'의 액션 장면은 한국 액션 영화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영화의 액션은 화려하거나 스타일리시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대신, 날것 그대로의 거친 현실감과 육체적 무게감을 전달한다.
특히 마석도가 펼치는 액션은 복잡한 동작이나 화려한 기술 대신, 압도적인 힘과 단순하면서도 효율적인 움직임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실제 거리에서 벌어질 수 있는 싸움의 모습에 가깝게 연출되었으며, 그래서 더욱 몰입감을 준다. 또한 좁은 골목길이나 가게 안, 지하철역 등 일상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액션 장면들은 더욱 현실감을 더한다.
마지막 대결 장면에서 마석도와 장첸의 일대일 대결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다. 이 장면은 화려한 편집이나 음향효과 없이도 순수한 연기와 카메라 워크만으로 강렬한 긴장감과 타격감을 전달한다.
가리봉동이라는 공간
'범죄도시'는 서울 가리봉동이라는 특별한 공간을 배경으로 한다. 가리봉동은 과거 공업지대로 번성했다가 쇠퇴한 후, 중국 동포들의 집단 거주지가 된 독특한 역사를 가진 곳이다. 영화는 이러한 가리봉동의 특성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한국 사회의 다양한 층위를 보여준다.
좁고 미로같은 골목길, 낡은 건물들, 국적을 알 수 없는 간판들이 늘어선 거리 등 가리봉동의 독특한 지역성은 영화에 특별한 분위기를 부여한다. 또한 이곳은 한국인과 중국 동포, 그리고 다양한 외국인들이 섞여 살아가는 공간으로, 글로벌화된 한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장소이기도 하다.
영화는 이러한 공간적 특성을 바탕으로 범죄와 치안의 사각지대,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특히 마석도와 그의 팀이 지역 주민들과 신뢰 관계를 맺고 범죄에 대응하는 모습은, 단순한 '나쁜 놈들을 잡는' 이야기를 넘어 지역 사회와 공존하는 경찰의 역할을 보여준다.
유머와 액션의 조화
'범죄도시'의 또 다른 매력은 강렬한 액션과 위트 있는 유머의 조화다. 영화는 심각한 범죄와 잔혹한 폭력을 다루면서도, 적절한 유머로 숨 쉴 공간을 제공한다. 특히 마석도와 그의 팀원들 사이의 대화나, 마석도가 범죄자들을 대하는 독특한 방식에서 웃음이 터져 나온다.
예를 들어 마석도가 아직 수갑을 채우지 않은 범죄자에게 "뛰어, 어서 뛰어!"라고 말하는 장면이나, 자신을 "대한민국 최강 괴물"이라고 소개하는 장면 등은 긴장감 속에서도 웃음을 선사한다. 이러한 유머는 단순히 웃음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캐릭터의 개성을 드러내고 영화의 긴장과 이완을 조절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마석도와 팀원들 간의 친밀한 관계와 일상적인 대화는 이들이 단순한 '법 집행자'가 아닌, 감정과 인간관계를 가진 실제 인물로 느껴지게 만든다. 이는 관객들이 캐릭터에 더 쉽게 공감하고 몰입할 수 있게 하는 요소다.
현실을 반영한 범죄 묘사
'범죄도시'는 단순한 오락물을 넘어, 한국 사회의 실제 범죄 문제를 반영한다. 영화에서 그려지는 '흑룡파'의 활동은 실제 한국에서 발생했던 중국 조직폭력단의 범죄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특히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납치, 폭력 등 외국인 범죄조직의 실제 수법들을 영화에 담아냄으로써 사회적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러한 현실적 배경은 영화의 긴장감을 높이는 동시에, 관객들에게 이것이 단순한 픽션이 아닌 우리 사회의 실제 모습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또한 영화는 이러한 범죄에 대응하는 경찰의 제한된 권한과 자원, 그리고 그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경찰관들의 모습을 통해 법과 정의의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프랜차이즈의 시작
'범죄도시'는 개봉 당시 7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에 성공했고, 이후 시리즈로 발전했다. 단순한 일회성 영화가 아닌, 마석도라는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 프랜차이즈의 시작점이 된 것이다. 이는 '범죄도시'가 가진 매력과 잠재력을 증명한다.
특히 마석도라는 캐릭터는 한국 영화에서 흔치 않은 강력한 원맨 캐릭터로 자리 잡았다. 그는 단순한 액션 히어로를 넘어, 한국적 정서와 가치관을 담은 독특한 캐릭터로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러한 캐릭터의 탄생은 한국 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영화의 한계와 아쉬움
물론 '범죄도시'에도 한계와 아쉬움은 존재한다. 단순한 이야기 구조는 때로는 예측 가능한 전개로 이어지기도 하며, 일부 부가적인 캐릭터들의 발전이 아쉬운 부분도 있다. 또한 빌런 캐릭터인 장첸의 배경이나 동기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아, 다소 평면적인 악역으로 남는다는 지적도 있다.
또한 중국 동포 커뮤니티를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 일부 캐릭터들이 스테레오타입에 갇힌 모습으로 그려진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이는 다문화 사회로 나아가는 한국 사회에서 더 섬세하게 다루어져야 할 부분일 것이다.
결론: 새로운 한국 액션 영화의 지평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범죄도시'는 한국 액션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 이 영화는 할리우드식 액션이나 홍콩 액션을 모방하지 않고, 한국적 정서와 현실을 바탕으로 한 독창적인 액션 영화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특히 마동석이라는 배우의 독특한 개성과 매력을 최대한 활용한 캐릭터 설정, 현실감 있는 액션 연출, 그리고 유머와 진지함의 균형 잡힌 조화는 '범죄도시'만의 강점이다. 이러한 요소들이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시리즈로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범죄도시'는 단순히 재미있는 액션 영화를 넘어, 한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고 정의와 법, 그리고 공동체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화려한 기술이나 복잡한 서사 없이도, 강렬한 캐릭터와 현실감 있는 연출만으로 관객을 사로잡은 '범죄도시'는 앞으로도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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